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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과학

해방 후 남한 경제학계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학적 동향

by 강이엄마 2022. 12. 15.

해방과 더불어 사회주의 계열의 마르크스주의 관련 저작 번역, 발간은 가히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최근 일제시기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저작 등 마르크스주의 원전 번역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제출되어, 해방 직후 한국 사회의 마르크스주의 '열'을 텍스트 차원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20년대 이후 소련의 저명한 경제학자로 활약했던 '에브게니 바르가'의 저서와 평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경우에도 전문적인 학술지에서 주요하게 인용했고, 학술지. 대중잡지에도 자주 번역 소개되었다.

해방 직후 경제학계의 동향에 관한 최호진의 회고에서 볼 수 있듯이, 해방과 더불어 신국가 건설 운동이 전개되는 속에서 '경제학'에 대한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윤행중은 당시 상황을 '일제하 학문에 대한 거세 상태에 있던 조선의 학도'가 해방과 더불어 '현실적 객관적인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화와 같은 의욕을 품고 발문 망 식 하는 그들의 진격한 태도'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해방 이후 경성대학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이 진용을 정비하여 재개하는 가운데, 교수 인원의 부족과 더불어 한글로 된 경제학 교재의 부재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해방 직후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나 연구. 교육여건 속에서 당시 경제학계의 학문 경향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에 다가가기 위한 실마리로서 경제학 교과서 내지 원론서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1933년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윤행중은 해방 이후 남한 최초의 경제 원론서라 할 수 있는 '이론경제학' 제1권(1947)을 발간했다. 일제 시기 케인스의 '고용과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을 1938년 조선에 최초로 소개했던 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책의 서문에서 '해방 후 경성대학 법문학부에서 행한 경제원론의 강의안을 토대로 '이론경제학 전 3권 중 제1권'으로서 출간한 것임을 밝히고, 그 저술의 연유를 '경제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을 구명하고 나아가 조선 경제의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계기'를 밝혀보려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환기 경제학'의 해명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 제관계는 그것이 발전함을 따라 붕괴의 과정을 밟게 되는 동시에 새로운 생산 관계, 즉 사회주의적 생산 제관계가 생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사회주의적인 것이 생성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제관계와 자본주의적 제관계는 동일한 질서 내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투쟁의 합칙성을 인식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서 사회주의적인 것의 생성과 그 발전에 관한 경 제이로 이 요청되는 것이다. 즉 역사적 전환기에 있어서는 경제는 질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되 한 개의 통일 물이요 따라서 자본주의 법칙만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에 특유한 법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전환 생성기 제관계는 그에 독특한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만큼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는 동시에 일보가 진하여 새로운 이론 체계를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기 경제학'의 문제설정은 '과도기적 경제 제 법칙을 통하여 우리의 당면과제인 조선 경제의 현실성을 정당히 인식하며 그것을 과학적으로 체계화' 시켜야 한다는 실천적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가 말하는 전환기란 무엇인가?

그는 세계적으로 전개된 독점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관해 서술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독점자본주의 경제'는 '그 통제를 일 층 강화'하여 '자본주의적 계획경제 단계로 진전할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 생산 제관계 생성의 객관적 물질적 기초를 형성하는 모태'가 된다고 인식했다. 따라서 '현 단계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생산의 사멸과 동시에 사회주의적 생산의 새로운 생성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으며, '해방 후의 조선 경제' 또한 이와 같은 '세계 경제발전의 한 개의 특수한 현상'이라 보았다. 해방 후 조선 경제는 고도로 발전된 독점자본주의도,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도 아니지만, '조선의 광공업 생산의 9할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인 재산의 국유화, 그리고 '토지 혁명'은 '반봉건적인 농업생산'의 '사회화 또는 소유의 균등화'를 초래할 것이기에 당시 '조선 경제의 특질'을 '사회주의 경제의 실마리 형태'라 파악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전환기의 경제학'은 '사회주의 경제의 실마리 형태로서의 조선의 경제 제 현상에 내재적인 제 법칙을 이론적으로 구명'함으로써 '자주적인 인민 경제 수립', 나아가 '세계 경제의 일환으로서의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경제학이었다.

남한의 경우, 대체로 1948년 정부수립을 전후한 시기부터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누그러뜨리거나 마르크스주의와 이질적인 학문적 경향의 저작들이 출판되어 대학 교육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저작으로 입문서로서 박기혁의 '경제학 입문'상권과 경제 원론 서로서 최호진의 '경제학 대요', 홍우의 '경제원론', 이종극의 '기초 경제학'을 들 수 있다.

박기혁의 입문서는 형식에서 남다른 점이 적지 않다. 순 한글을 사용하면서 간혹 드물게 한자를 괄호로 병기했으며, 경제용어를 표기할 때 '영어'를 기준으로 삼았고, 장별로 말미에 '질문','응용','토론','리포트 설정하여 수록했다.

 

출처: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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