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회과학

1950년대 후반의 내셔널 인터레스트

by 강이엄마 2022. 12. 21.

1957년 새해 국제정세를 전망하는 한 좌담회에서는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과 반둥회의, 인도 네루의 비동맹 노선 등이 주된 논제로 다루어졌다. 참석자 중 이승만 정권의 초대 내무부 장관이었던 윤치영은 중동지역 민족주의를 극히 경시하면서 네루의 비동맹 노선에 대해 노골적인 무시와 적의를 드러냈지만, 그를 제외하고 좌담회에 참석한 지식인들은 대체로 제삼 세계 국가들의 노선과 민족주의 운동의 의의를 우호적.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윤치영 외의 논자들은 이집트가 오랫동안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비해 영국과 프랑스에 더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이집트에 대한 영국 가 프랑스의 군사행동에 극히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네루의 비동맹 노선은 양대 진영의 대비 완화에 역할이 적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피억압 민족으로서의 단결', 협력하여 서구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의 침략을 물리치고 '자주적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하려는 아시아. 아프리카 내셔널리즘의 근본 입장과 특징에 따라 '공정하게' 파악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당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완화하면서 미국의 '제삼 세계'에 대한 정책이 '군사원조', '지역적인 안전보장'에서 경제건설로 변화하는 추세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위 좌담회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다음 글에는 1950년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사회 정치 세력과 지식인층이 '제삼 세계' 국가들의 동향에 관해 논의한 주요한 주제들이 담겨 있다.

이제 아시아 각국은 각자의 방법에 따라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련 지배하의 소련 방식대로의 중공의 5개년계획 중립주의 국가인 인도의 5개년 계획, 미국 원조의 의존하는 자유 아시아제국의 공업화 운동. 누가 빨리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 두고 봐야 할 장래의 일에 속할 것이다. 그 방법의 호불호는 고사하고 아시아제 민족이 빈곤에서 해방되려고 최대의 노력을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는 공산주의가 새로운 위협일망정 옛 식민지주의를 배척하기 위하여 소련의 원조를 받으려는 것도 그 까닭이다. 낫 셀의 독재와 전제는 우리 아시아인의 민족해방운동 중요 목표의 하나-전제 타도-에 어긋나기 때문에 배척하지마는 그의 필사적인 영. 불 식민지주의의 배척에는 동정한다. 이번에 수에즈 운하 사건에서 미국이 영. 불의 식민지 정책을 지지하였던들 아시아의 모든 우의를 한꺼번에 잃어버렸을 것이고 앞으로 가능성이 많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어떤 형식이라도 도와주기만 해도 미국은 같은 결과에 봉착할 것이다. 이것이 수 세기, 수세대 동안 아시아 민족의 가슴속에 흘려 내려오는 민족주의이다. 전제. 부정. 불평등. 빈곤을 일소하기 위하여 서의 민족해방운동이다.

김준엽은 같은 글에서 아시아를 '정체 사회의 대명사'이자 '전제주의' 혹은 '전제의 전통'에 얽매여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당대 '제삼 세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 의의를 위와 같이 높이 평가했다. 또한 중립주의 노선에 대한 비판이 논지의 핵심을 차지하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이 글에서는 '제삼 세계' 국가들의 민족주의와 근대화, 혹은 빈곤 해방의 문제, 반식민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관계, 그리고 '제삼 세계' 국가들의 정치체제에서 나타났던 권위주의적. 독재적 경향의 문제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당시 별개로 분립되지 않고 긴밀한 상호연관 하에 논의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태도가 당대 한국 사회의 현실 인식 문제와 결부되어 나타났다는 점을 새기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측면을 고려하는 가운데, 이하에서는 1950년대 후반 한국 지식인층의 '제삼 세계' 인식의 변동 양상을 주로 국제정세 인식과 관련하여 살펴보려 한다.

조효원은 1955년 발간된 '아세아 정치론'에서 '구미' 민족주의는 단선적인 문명화 논리에 따라 '침략행위를 '백인의 책임', 무슨 신탁이니 사명'이라 분장함으로써 구미 적 맹점을 지니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아시아 민족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기존 19~20세기 전반 아세아 민족주의의 실패는 '양이, 척화, 백화라는 표어로 표시되는 아세아 제 민족의 지나친 자기 봉쇄'에 기인했다고 평가하면서, 객체. 환경의 변화라 할 수 있는 세계 대세에 순응하면서도 주최 측의 자기 변혁을 통해 서구에의 저항에 곡축 하던 봉쇄 적인 방향이 아니라 구미 사회와 불가분적이면서 대등적인 일환으로서 그 자주적 지위를 확보하는 신 아세아를 제시했다. 서석순은 한국전쟁을 들면서 공산주의적 제국주의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아시아 국가들은 구미 제국에 대해 소아병적 태도를 버리고, 내적인 사회. 경제적 여건, 즉 격증하는 인구와 경제적으로 미개 상태 등의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 콜롬보 플랜과 같이 구미 제국과의 협조. 협력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다시 말해 냉전 진영 대립 하에서 제삼 세계 국가들이 제국주의 구종 중심국들에 대한 항거로서 대외적인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적 운동에 집중하기보다는 대내적인 경제개발과 사회적 개혁을 위해 자유 진영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결합. 협력해야 함을 내세웠다. 냉정 질서 하의 국제정세, 국제정치 인식과 관련하여, 1950년대 후반 한국 지시인층에게 새롭게 주목받았던 것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그중에서도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였던 한스 모겐소의 현실주의 이론이었다.



출처: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댓글